非문학

[프랑스 문학사조] 16세기, 유럽의 전성기 르네쌍쓰의 프랑스에는 어떤 일이?

오로지 edior-ozi 2024. 7. 15. 15:12

길고 지루하고 따분하고 무슨 이야기하는지도 잘 모르겠는, 그런 중세시대가 지나갔습니다. 호! 본격적으로 재미있는 불문학이 시작됩니다.아닐수도16세기, 익히 알고 계시듯이 르네상스의 시대입니다. 사실 르네상스는 14,15세기부터 시작된 문화부흥운동입니다. 하지만 문학에서 르네상스가 빛을 발한 것은 16세기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부흥'의 '문화'는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이하 그리스로마)를 말합니다. 5세기 로마의 몰락으로 시작된 야만의 시대를 5세기 이전의 문화를 다시 일으켜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움직임이었죠. 더불어 중세 시대가 종교의 힘이 강해 신에 대한 예찬과 신을 위한 삶을 중시했다면, 16세기 르네상스 시대는 종교개혁과 함께 신보다는 인간에 초점을 둔 '인본주의'가 발전한 시기입니다. 그리스로마의 신의 모습을 조각한 작품들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역시 그리스로마 문화의 영향이 컸다는 것을 알 수 있겠죠? 동시에 16세기는 인쇄술의 발달과 신대륙 발견 등 여러 큼지막한 사건들이 있었던 시기기도 합니다.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화가 보티첼리의 대표작 <비너스의 탄생>. 참 이쁘다



앞서 말했듯이 인본주의는 그리스로마 문화로 회귀하려는 운동입니다. 에라스무스, 토마스 무어 등 여러 학자들이 고대 문헌들을 재해석하고 분석하고 정치,과학,미학,종교 등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 고전 연구가들은 기존 고전작품들에 있었던 구리구리하지만 주렁주렁 달려있는 주석들에 의존했던 중세의 번역본을 배제하고 원본 그 자체를 보고자 노력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이와 같은 방식이 성경에게도 적용되었고, 루터는 독일어로, 에타펠은 불어로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청교도신자였던 칼빈(혹은 칼뱅)은 신앙의 핵심이 성경 안에 있다고 믿었고, 따라서 신을 알기 위해서 지금까지 쭉 있어왔던 종교의 권위는 하나도 쓸모 없는 것이라는 것이죠. 결국 낭트칙령으로 종전되기까지 수많은 피를 흘리게 된 신교와 구교와의 종교전쟁이 벌어지고 맙니다.

종교가 뭐라고 그렇게 싸우나 싶다. 하긴 이거야 오늘날에나 할 수 있던 생각일듯싶기도


물론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지만 당시 프랑스의 왕이었던 프랑수아 1세가 이탈리아 원정을 나가면서-비록 여러 이해관계가 맞물려 실패하기는 했지만- 본 것을 바탕으로 프랑스에도 르네상스의 흐름을 전파시켰습니다. 그는 여러 이탈리아의 예술가들의 후원자가 되어 그 유명한 다빈치의 <모나리자>도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기의 프랑스 문학은 어떘을까요?

우선 시 장르부터 봅시다. 프랑수아 1세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첼리니 등 미술 분야에만 아낌없는 후원을 한 것은 아닙니다. 클레망 마로Clément Marot는 프랑수아 1세의 후원을 받은 시인이자 번역가로 론도체나 발라드와 같은 중세의 문체에서 편지시, 애가 그리고 소네트sonnet라는 새로운 형식을 프랑스로 가져옵니다. 소네트는 정형시의 형태 중 가장 대표적이며 후에 19세기에 등장할 보들레르와 같은 시인들도 자주 사용한 형식이며 물론 이탈리아의 민요에서 유래한 형식입니다.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지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죠.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은 또 다른 시인들이 있으니 그들을 리옹학파École de Lyonnaise라고 합니다. 이탈리아 작가 페트라르카의 영향을 받은 이들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플라토닉 사랑을 노래한 모리스 세브Maurice Scève가 있습니다.


Clément Marot. 이마모양이 낯설지 않다.​


르네상스 프랑스 시인에 플레이아드la Pléiade 학파를 뺴놓을 수는 없습니다. 플레이아드는 원래 Coqueret 대학교의 시인 양성소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학생들은 이탈리아의 문학과 그리스로마와 모든 장르의 시를 향유했습니다. 플레이아드학파를 이끈 시인이 바로 조아생 뒤 벨레Joachim Du Bellay입니다. 그는 프랑스어로 시를 쓰기를 권유한 시인입니다. 물론 프랑스어가 이 때서야 정립된 것은 아니지만 고대어로 시를 쓰는 것이 주류이던 때였으니까요. 뒤 벨레는 프랑스어로 시를 쓰면 어휘력이 좋아질 것이라 생각 했고, 그 방법으로 방언을 차용하거나 라틴어에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작시법을 다듬기도 한 그의 시는 대체로 서정적이었고 우울했습니다. 그의 친구였던 롱사르Pierre de Ronsard도 서정시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데요, <엘레네를 위한 소네트Sonnets pour Hélène>는 정말 상남자 롱사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입니다. 당신 지금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중에 할머니되서 겁나 후회할거야! 그러니까 나를 사랑해! 하고 쏘아붙이는 상남자 롱사르.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이 평범한 사람이라곤 안했습니다.


시를 넘어서 산문에는 그 무시무시한 프랑수아 라블레Francois Rabelais의 <가르강튀아Gargantua> 와 <팡타그뤼엘Pantagruel>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아주 어마무시한 작품으로 어느 페이지든 30페이지 정도는 읽어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서 라블레는 아주 널리 알려진 작품들의 패러디와 노골적인 표현들로 종교계와 온갖 것들을 풍자합니다. 정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후.

몽테뉴의 수상록. 자세한 설명은 또 생략한다.


마지막으로 몽테뉴의 <수상록Les essais>이 있습니다. 이미 유명한 작품이죠. 원제인 'essais'는 시도,경험을 뜻하는데 몽테뉴는 이 책에서 그가 ㅇ자유를 얼마나 충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시도해본 것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몽테뉴의 감상과 이에 따른 비판이 주를 이루는데요, 그는 이 책에서 《나는 내 책의 소재 그 자체다je suis moi-ême la matière de mon livre》라고 말하며 금욕주의(욕망으로부터의 해방), 회의주의(내가 무엇을 아는가?), 쾌락주의(나를 위한 인생)의  그가 생각한 세 가지 올바른 삶의 자세를 제시합니다. 고전들을 읽어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시대를 넘어서 오늘날까지도 공감될 수 있는 작품이 명작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이렇게 또 르네상스까지 지나왔습니다. 재밌게 쓸 생각이 없기도 하고 작품 설명만 주구장창 늘어놓는 포스팅이다보니 쓰는 데에도 오래 걸리고 재미는 없고 아무도 안 읽고 그렇기는 하지만 또 이렇게 정리해보니 새삼 느끼는 것이 많아지네요.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원래의 아름다움을 인간에게서 찾으려고 한 문예부흥운동, 르네상스의 16세기가 지나고 17세기에는 절대왕정의 바로크와 고전주의로 이어지겠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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