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커밍아웃했을까

《반도덕주의자(L'Immoraliste)》
앙드레 지드
소설은 허구의 장르다. 물론 작가가 소설 속에 사실적인 요소를 넣으면서 수필과 소설의 경계를 허물면서 작품의 주제 의식을 강조할 수는 있지만, 작가가 직접 "이건 백퍼 팩트인 수필이요"라고 하지 않는 이상 소설은 어디까지나 허구의 장르로 남는다. 소설이 줄 수 있는 가치는 여러 가지가 있고 그 중 가장 앞쪽에 있는 건 줄거리를 앎으로서 얻을 수 있는 재미일 것이다. 하지만 소설, 특히 고전을 읽을 때는 줄거리 너머에 있는 것을 읽는 것이 필요한데 이는 고전에는 현대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2020년에 출간된 소설에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건 동시대의 문제 의식을 공유하기 때문인데 아무래도 100년 전, 1000년 전의 작품의 의식을 공유하기 위해선 조금 인위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사실 혹은 진실
지금 여기 프랑스의 위대한 문인 앙드레 지드(André Gide)의 소설을 이야기할 때 이런 작업이, 뭐 그렇게 깊게는 아니더라도 작가의 삶정도는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앙드레 지드에게 소설(이야기)의 존재 이유는 "오직 진실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곧 작가가 허구의 문장을 집필하게 된 이유가 진실을 밝히는 것에 있다는 뜻이다.
앙드레 지드는 일찍이 교수였던 아버지를 여의고 엄격한 청교도였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종교적 계율에 억압되며 자란 탓인지 그의 건강은 썩 좋지 못했다. 무튼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제목부터 자전적인 《앙드레 발트레의 수기》(1891)로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한 후, 1893년 북아프리카로 여행을 갔다가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깨닫고 도덕과 종교의 구속에서 해방된다.1895년 외사촌 마들렌과 결혼한 뒤 평생 섹스리스를 유지했다. 그 이후 문예지도 창간하고 노벨문학상도 받는 등 프랑스 문단에 화려한 이력을 보이고 있지만, 《반도덕주의자》(혹은 《배덕자》)를 설명하려면 이정도면 충분하다.
의문의 커밍아웃?
지드의 첫 장편 소설이자 그의 가치관 변화를 상징하는 《반도덕주의자》의 줄거리는 설명이 민망할 정도로 단순하다. 주인공 미셸(지드 본인으로 봐도 무방하다)과 그의 아내 마르슬린은 미셸이 유산으로 받은 자금으로 여행을 다닌다. 여행 도중 폐병에 걸린 미셸은 아내의 지극한 간호를 받지만 여행 과정에서 마주친 젊은 청년들에게 육체적으로 끌린다. 아내가 임신하자 잠시 그녀에게 동정을 보내곤 하지만, 결국 아내가 병으로 사망한 뒤 미셸은 아이와 어울린다. 이것도 퀴어 문학으로 볼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진실을 받아들이고자 했던 소설가의 참회록 내지는 수필로 보고 싶다.
미셸이라는 인물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조명하고 싶었던 지드의 흔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여행 중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는 부분은 실제 그의 생애와 그대로 일치하는 부분이다. 정체성을 깨닫고 번민하며 죄책감을 느끼는 과정을 소설 전체에 묘사하고 있다.
나는 해방되었어. 혹은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게 무엇이라는 말인가?
나는 이 용도 없는 자유 떄문에 괴로워. 내 말을 믿어 줘.

나는 도덕적이지 못 합니다
미셸 혹은 지드는 자신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괴로움을 토로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커밍 아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고, 당시 동성애라는 건 청교도에서나 사회적 시선으로나 일종의 범죄였다. 미셸이 목티르의 가위를 훔치고 그와 관계를 맺는 것처럼. 그러니까 l'immoraliste, 배덕자 혹은 반도덕주의자는 지드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고 이 책이 출간되기 전까지 그는 '클로짓 게이'였으니 이 작품이 일종의 커밍 아웃쯤 될까.
한때 나는 확고하고 고정된 사고를 했어. 그리고 바로 그것이 진정한 인간을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하지만 지금 그런 사고는 하지 않아.
하지만 동시대의 진솔한 양성애자 오스카 와일드와는 달리 앙드레 지드는 진실을 세상 앞에 밝히는 것을 두려워 했다. 사르트르는 지드를 "언제나 물러설 준비 태세로 변방에 머물고자 한 신중한 사람"이었다고 평했다(본문 11쪽). 진실을 추구하지만 그렇다고 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지는 못하는, 일종의 모순이 지드의 삶을 지배했다. 그러니 이 작품이 수필이 아닌 소설로 분류된다는 건 이 작품이 진실에 근접하려고는 하지만 진실이라고 밝히고 있지는 않다는 메시지로도 보인다.
진실을 위한 필생의 과정
하지만 앙드레 지드의 모든 소설을 보게 되면 이 작품이 '지드식' 커밍 아웃이라고 생각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소설은 기본적으로 허구의 장르지만 내터리브에 사실적인 요소를 섞으면서 진실처럼 보일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좁은 문》, 《전원교향악》, 그리고 《반도덕주의자》에서 표현되는 것처럼, 굳이 "이건 자전적인 이야기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그런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소설은 그가 이루고자 했던 진실을 가능하게 한 가장 신중한 도구"(본문 12쪽)라는 표현처럼, 수십 년간의 빌드업을 통해 이룩할 수 있었던 값진 성과가 아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