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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아카이브

[문장 아카이브] 아멜리 노통브

오로지 edior-ozi 2024. 7. 16. 09:33

 

1.
「네팔 아이들이 좋겠어.」 나는 기쁨에 차서 외쳤다.
「어째서 네팔 아이들을 미워해야 하는데?」
「네팔이라는 나라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직사각형이 아닌 국기를 쓰고 있거든.」
놀라운 침묵이 좌중을 휩쓸었다.
「정말이니?」 벌써 흥분으로 탁해진 목소리로 누군가가 물었다.
나는 두 개의 삼각형으로 이루어진, 공중 팽이를 길이로 이등분해 놓은 모양의 네팔 국기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 자리에서 네팔 아이들이 적으로 선포되었다.

_ 《사랑의 파괴》(열린책들, 2012)

 

2.
「나에게 사는 법을 가르쳐 줘요. 나에게는 그게 꼭 필요하니까.」

_ 《비행선》(열린책들, 2023)

 

3.

이 세상은 살인자들로 득실대고 있소. 즉 누군가를 사랑한다 해놓고 그 사람을 쉽사리 잊어버리는 사람들 말이오. 누군가를 잊어버린다는 것, 그게 뭘 의미하는지 생각해본 적 있소? 망각은 대양이라오. 그위엔 배가 한 척 떠다니는데, 그게 바로 기억이란 거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기억의 배는 초라한 돛단배에 지나지 않는다오. 조금만 잘못해도 금세 물이 스며드는 그런 돛단배 말이오. 그 배의 선장은 양심 없는자로, 생각하는 거라곤 어떻게 하면 항해 비용을 절감할까 하는 것뿐이오.
그게 무슨 말인지 아시오? 날마다 승무원들 중 쓸모 없다고 판단되는 이들을 골라내어 처단하는 거요. 바다로 내던져지는 이들은 선장에게 이미 봉사한 적이 있는 이들이라오. 한 번 써먹었으니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거지. 단물 다 빨린 것들한테 더 이상 뭘 바랄 수 있겠어?

_ 《살인자의 건강법》(문학세계사, 2008)

 

4.
˝당연하지. 난 자네의 악마적인 부분이니까. 악마란원래 모든 것에 대해 대답을 갖춘 존재이니까.˝ 

_ 《적의 화장법》(문학세계사, 2013)

 

5.

거식증은 내게 해부학적인 가르침을 주었다. 나는 내가 해체해 버렸던 이 몸뚱이를 알게 되었다. 이제 몸을 다시 만들어 가야 한다. 이상야릇하게도 글쓰기가 도움이 되었다. 글쓰기는 무엇보다 육체적인 행위였다. 내 안에서 뭔가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이 세포 조직 비슷한 것을 이루어 내 몸이 되었다.

_ 《배고픔의 자서전》(열린책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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