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체로 흐림

세계문학 편집자의 참을 수 없이 즐거운 세계문학 이야기

소설 10

내 남편이 나몰래 바람피고 있으면 어떡하지? 죽일까?

✰✰✰ 데뷔와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희귀한 작품. 남편을 사랑하면서도 그만큼 의심하는 '아내', 그런 아내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담았다. 독자는 '아내'가 남긴 사랑의 자취를 따라 두 남녀의 아슬아슬한 일주일로 빠져든다.​프랑스 독자들이 열광한 이유를 알 수 있을 만큼, 온갖 곳에서 '프랑스스러움'(?)이 흘러넘친다. 지독한 망상,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개방된 성, 평범한 일상이 흘러가면서도 없으면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꼭 어딘가 있는 반전까지. 지독한 사랑과 의심이 한데 섞인 주인공의 심리 묘사와 표현이 탁월하다. 남편이 자신을 귤로 비유하자, 귤을 평가절하하는 아내가 사랑이 식었다며 삐지는 씬은 서스펜스의 극치. 그 외에도 '이렇게까지?' 싶은 구석이 많아 흥미롭..

프랑스 문학 2024.07.16

[문장 아카이브] 아멜리 노통브

1.「네팔 아이들이 좋겠어.」 나는 기쁨에 차서 외쳤다.「어째서 네팔 아이들을 미워해야 하는데?」「네팔이라는 나라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직사각형이 아닌 국기를 쓰고 있거든.」놀라운 침묵이 좌중을 휩쓸었다.「정말이니?」 벌써 흥분으로 탁해진 목소리로 누군가가 물었다.나는 두 개의 삼각형으로 이루어진, 공중 팽이를 길이로 이등분해 놓은 모양의 네팔 국기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그 자리에서 네팔 아이들이 적으로 선포되었다. _ 《사랑의 파괴》(열린책들, 2012) 2.「나에게 사는 법을 가르쳐 줘요. 나에게는 그게 꼭 필요하니까.」_ 《비행선》(열린책들, 2023) 3.이 세상은 살인자들로 득실대고 있소. 즉 누군가를 사랑한다 해놓고 그 사람을 쉽사리 잊어버리는 사람들 말이오. 누군가를 잊어버린다는 것, 그게..

문장 아카이브 2024.07.16

내 첫사랑, 여전히 썅년이어줘서 고마워. 남한테도 부디, 그렇게 계속 쓰레기처럼 굴어주기를.

​아멜리 노통브의 대표작으로는 주로 《적의 화장법》(2001) 혹은 《살인자의 건강법》(1992, 데뷔작)이 꼽히지만, 나는 이 책을 먼저 알았다(그리고 이 작품이 대표작이라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면 책이 아니라 만화라고 해야 할까. 아마 인터넷을 오래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봤을 만화다. 짤도 돌고 돌아 여러 사이트에 있으니 어디가 오리지널인진 모르겠다. 만화 링크는 아래.​https://mania.kr/g2/bbs/board.php?bo_table=humor&wr_id=565518 무튼, 아멜리 노통브라는 작가를 먼저 보자.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벨기에 작가인 노통브는 1967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어라라... 벨기에야 원래 고유어가 없고 프랑스 옆에 있다지만 일본이라니(그래도 정체성은 당연히 벨기에..

프랑스 문학 2024.07.16

[문장 아카이브] 알베르 카뮈

1. 그러나 리유는 몸을 일으켜 세워 앉으며 무뚝뚝한 목소리로,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행복을 택하는 것이 부끄러울 게 무어냐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랑베르가 말했다. “그러나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_ 《페스트》(책세상, 2023) 2. 삶에 대한 절망 없이 삶에 대한 사랑은 없다._ 《안과 겉》(책세상, 2024) 3. 최후의 심판을 기다릴 필요 없어요. 매일 매일이 최후의 심판이니까요. _ 《전락》(책세상, 2023)4. 이 책을 쓴 뒤로 많이 걸었으나 (…) 앞으로 나아가는 줄 알았는데 기실 뒤로 물러나고 있을 때가 흔히 있었다_ 《안과 겉》(책세상, 2024) 5. “나는 내 시대를 증오한다.” 생텍쥐페리는 죽기 전에 이렇게 썼다. 그렇게 쓴 까닭은 내가 앞서 언급한 ..

문장 아카이브 2024.07.15

환갑에 소설 하나 쓱 휘갈기고 프랑스 문단을 아작 씹어먹은 건에 대하여

오르부아르 / 피에르 르메트르"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작가"―《레스트 레피블리캥》(프랑스 일간지)문학은 예체능의 범주에 있습니다. 능력이 필요하지 않은 분야가 어디 있겠냐마는, 보통 예체능은 어릴 때부터 싹을 본다고 하죠. 천재는 일찍부터 알을 깨고 나온다나. 문학은 어떨까요? 사실 소설가/시인은 일찍 등단을 하더라도 전업을 하기 어려워서 빛을 늦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슨도 58살에 첫 책을 발표했고, 국내로 보면 박완서 선생님도 마흔 가까이에 등단을 하셨죠. 오히려 이런 대기만성형 작가가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프랑스도 예외는 아닌데요, 최근(?) 예순 가까운 나이에 등단해 문단계를 말 그대로 씹어먹는 작가가 있습니다. 살아 있는 현대 작가라서 조금 낯설 수 있지만, 피에르..

프랑스 문학 2024.07.12

19세기 프랑스에 도네이션과 별풍이 있었다면

05 나나 / 에밀 졸라"나는 어제 하루 온종일 를 읽는 데 보냈다네. 그리고 잠을 이루지 못했지. 대단한 책이야, 이 사람아!"―귀스타브 플로베르(소설가)최근에 영화관에서 '가오갤 3'을 봤습니다. 시리즈물은 그 특유의 방대한 세계관을 감내할 자신이 없어 차마 시작할 엄두를 못 내는 편인데요 , '가오갤'은 그나마 세 편으로 딱 끝나니 좋더군요.  그래도 마블은 다 못 보겠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대서사시 같은 세계관에 매혹되는 관객도, 독자도 꽤 많습니다. 19세기 프랑스문학에는 크게 두 시리즈물이 있습니다(정확히 말하면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정도지만). 오노레 드 발자크의 '인간 희극'과 에밀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인데요, 두 작가 모두 제가 아주 애정하는 양반입니다. 이번에는 그들 중 에밀..

프랑스 문학 2024.07.08

금수저 도련님은 왜 목숨을 걸고 비행기를 탔을까

야간 비행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생텍쥐페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다.그는 객관적이거나 주관적인 시선을 벗어나,영혼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본다."_ 《르 피가로》'프랑스 문학'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무엇인가요? 저처럼 얕게 프랑스 문학을 공부한 사람이야 누구하지 누구하지를 고민하지만 사실 이 답은 꽤나 자명한 편입니다. 바로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입니다. 작가 이름은 어색할 수 있지만, 《어린 왕자》는 누구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예전부터 온라인 서점 프랑스 소설의 순위를 보고 있는데요, 《어린 왕자》는 역자·판본·출간 시기를 가리지 않고 늘 상위에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어린이를 위한 작품으로, 요새는 어른을 위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남녀노소 누구나 언제든 읽어도 좋은 작품입니다. ..

프랑스 문학 2024.07.06

앗! 야생의 프랑스문학 신간이(가) 나타났다! _ 2024년 7월 1주차

본격 프랑스문학 애호가 컨셉충의 책임 없는 쾌락 콘텐츠…!‘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지만 만드는 사람이 재밌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에서 출발한 그 무언가.불무낙몬은 이번주도 달립니다. 마크롱이 광고 문의를 할 때까지!1. #작가들 #앙투안볼로딘 #워크룸프레스힙스터 출판사 워크룸프레스의 힙스터 작가 앙투안 볼로딘 선집.국현미를 배회하는 느낌이랄까, 독특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작가다.힙스터 뽕맛에 취하려면 이 작가와 베케트는 필수. * 사실 이렇게 말했지만, 나도 볼로딘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다. 키냐르와 비슷하지 않을까.'봐야지 봐야지' 생각하면서도 '나중에'를 꼭 붙였던 기억이. 후기 좀 남겨주세요. 2. #가자에띄운편지 #발레리제나티 #바람의아이들요샌 부쩍 청소년 소설이 강세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

자타공인 블랙코미디 맛집. 그런데 이제 말장난을 곁들인

"신랄하고 도발적이고 특별하고 오만한 특유의 모습에 충실한 신예 작가"_ 《상트르 프랑스》누군가 "프랑스 소설 좀 추천해달라"라고 하면, 얕은 고민에 빠집니다. "음... 플로베르랑 프루스트, 아 그리고 카뮈도 읽으세요"라고 기계적으로 대답…하기엔 너무 추천봇(bot) 같지 않나요? 보통 '서울대 권장 100선' 같은 뻔한 리스트를 기대하고 물어보는 건 아닐 테니 말이죠(그렇다고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원하지도 않을 겁니다). 그래서 한 번 더 생각하고 볼테르의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사르트르의 《닫힌 방, 선한 신》,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권합니다. 이 셋은 아무것도 모르고 읽었던 시절에도 '재미있다'라는 인상이 남았고, 실제로 조금 알고 다시 보니 '의미도 있다'의 범주에 드는 ..

프랑스 문학 2024.07.05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당연히 변하지, 할 수만 있다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Aimez-vous Brahms...)》 _ 프랑수아즈 사강 시대불문 세대초월 '사랑'타령 '사랑'만큼 뻔한 소재이면서도 몰입하게 만드는 감정이 있을까?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단골 소재지만 로맨스라는 장르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이 문장에서조차 사랑이라는 단어가 쓰이는구나. 그만큼 사랑이라는 감정이 보편적이면서도 사람들이 환상을 꾸게 한다. 하지만 그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식기 마련이다. 콩깍지가 벗겨지고 난 커플들은 정으로 사귄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그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하면, 그러니까 그 '정'마저도 식는다면 어떨까? 프랑수아즈 사강의 는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한 중년의 커플과 젊은 청년의 이야기다. 프랑스인은 브람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소설 속의 ..

프랑스 문학 202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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